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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명은 1987년을 쓰면서 2017년을 본다고 했다. 무려 30년. 그런데 그만큼의 시간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정치 체제부터 87년 체제라고 하지 않나. 그때로부터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겉모양은 많이 달라진 듯 하지만(내가 보기엔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전철에서 신문 대신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정작 살아가는 진짜 모양새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사람들의 의식 저변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본다. 그래서 2010년대에 1987년의 일을 소설을 쓰면서 별로 저항감을 느끼지도 않고, 오히려 현재감을 느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 소설이 발표된 이후 벌어진 일을 생각하면. 기준과 태준. 그들은 모두 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고 관리되어온(그래서 ‘관리관’인가?) 요원이었다. 한 사람에게는 미끼의 역할을, 다른 이에게는 사냥개의 역할을 맡겼지만, 그 경계는 사라지고 결국엔 미끼이자 사냥개인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그런 역할을 맡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다고 생각했을 뿐, 자신들이 커다란 연극 속의 배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지독히도 성실히 연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이런 일이 있었을까 싶긴 하다. 그 정도로 정보 기관이 오랜 기간(10년도 넘는?)을 들여 공작을 하고, 그것도 이렇게 복잡한 관계를 만들었을까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실이 있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소설이며, 소설은 허구적인 상황을 통해 시대와 인물을 이해하는 장치니까.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1987년의 모순적이고, 파괴적이고, 허무적인 상황을 그려낸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한쪽 면만을 그려내고 있으며, 그게 모든 것의 진실일 수는 없는 것이지만. 특히 당시 운동 진영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많이 허술하게 파악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너무 연극에 대해서, 연극과 등장 인물의 상징에 대해서 강의하듯이 풀어놓은 것은 소설 답지 못하다. 대부분 이중적인 상징인데, 그런 이중성을 통해서 인간이, 상황이 하나로만 정의 내릴 수 없으며, 그렇게 파악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사회학 서적도 아닌데 그런 부분을 명료하게 파악하면서 ‘소설’을 읽어나가는 것은 좀 피곤한 일이다. 기준이 최민석이 되고, 최민석이 국회의원이 되는 설정은 절묘했다. 이중 스파이가 항상 파멸하란 법은 없지 않은가? 혹시 그런 인물이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 봤지만, 소설은 소설이다.
압도적인 서사의 귀환!1987년 6월과 2017년 6월,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고 우리는 또 얼마나 바뀌었는가 선보이는 작품마다 마니아를 양산하며 대중을 끊임없이 매료시켜왔던 작가 이정명이 4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장편소설 선한 이웃 이 출간되었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정보기관 공작원과 권력의 타깃이 된 연극 연출가 간의 대립을 담은 선한 이웃 은 생존을 위해 악에 부역할 수밖에 없었던 이 사회의 주변인들이 겪는 고뇌, 갈등 그리고 최후의 선택을 그린 작품이다. 전작들에서 조선 시대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역사와 허구의 결속을 흥미롭게 이끌어냈던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직접 겪은 80년대의 한국 현대사를 바탕으로 한층 진화한 서사, 보다 깊이 있고 묵직해진 메시지를 선보인다. 선한 이웃 은 1984년 서울대 프락치 사건을 모티프로 운동권의 실세로 지목된 미지의 인물과 그를 쫓는 공작원, 젊은 연극 연출가와 그의 연인 그리고 모든 공작의 배후에 서 있는 관리자 등 다섯 명의 시점으로 격동의 시대를 돌아본다. 작가는 각각의 등장인물들을 차분하게 조명하면서 혼돈과 절망의 구렁텅이로 개개인을 몰아가는 국가권력에 주목한다. 또한 그 이면에서 ‘정의’와 ‘선’이 도구적 가치로 활용되며 굴절되어가는 과정들을 생생하게 조명해낸다. 특히 작품 말미에 등장하는 충격적 반전은 우리에게 이 이야기가 과거에 묶인 것이라기보다 현재에서도 충분히 적용될 만하다는 점에서 작품의 메시지를 더욱 또렷하게 각인시킨다. 특히 1987년 6월 민주항쟁 3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선한 이웃 은 지난날 권력의 횡포에 맞서 촛불을 들었던 우리의 기억과 맞물리며 또 다른 의미의 결을 획득한다. 본 작품은 그저 80년대를 감상적으로만 다뤄왔던 후일담 소설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 시대의 상황을 보다 입체적으로 조명해보려 한 문학적 시도로써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제1부 최민석
제2부 이태주
제3부 김진아
제4부 김기준
제5부 엘렉트라
제6부 관리관
제7부 최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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