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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 세트

소읍읍 2024. 1. 26. 20:31


미생을 빌리러 갔다가 윤태호 작가의 다른 책이 보여서, 그리고 완결까지 된 책이어서 같이 빌려왔다. 사전 정보 전혀 없이 작가님 이름만 보고 읽은 책이다. 신안 앞바다에서 보물급 도자기가 딸려 올라오자 돈 냄새를 맡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관석과 희동은 천 회장 측 부탁을 받았고 뒤이어 부산 김 교수 무리와 광주 조청 무리까지 합세한다. 돈을 위해 모인 자들이다 보니 돈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기도 한다. 젊음이나 힘이 우월해도 돈이 있어야 오야가 될 수 있다. 자기한테 얼마가 떨어질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사기꾼들의 말놀음에 허황된 꿈을 꾸며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이 모든 사태의 배후인 천 회장과 사모는 누구보다 돈에 대한 욕망이 크고 치밀한 성격이었다. 천 회장 사모의 교활하고 악랄한 모습은 끝까지 순진하기만 한 다방아가씨와 비교되어 강렬한 인상을 준다. 나중에 뛰는 사모 위에 나는 천 회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 영감탱이 봐라~’ 이런 생각과 함께 뒷목이 뻐근해진다. 사기꾼들이 수시로 작당하고 서로 뒤통수를 치고, 치고, 또 치는 이야기가 반복되어 긴장감과 피로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을 때 ‘천 회장’이 갑자기 쓰러지며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진품 도자기를 건져 올려야 하는 작업이 나중에는 굳이 진품이 아니어도 되는 상황으로 바뀌면서부터 뭔가 허탈했는데 천 회장이 쓰러지니 더 허망하고 허탈했다. 정의롭거나 양심적인 놈 한 명도 없고 죄다 나쁜 놈들뿐인 이야기다. *책속에서* -“이 친구야. 사기를 치려면 뭐가 가장 중요한 줄 알아? 거짓말? 말재주? ‘진심’이 가장 중요해. 책상 위에 물건 놓고, 이건 신안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물건이다! 이 생각에 스스로 정직해져야 하는 것이지.” -가져다 팔아야 돈이지 그릇이 돈은 아니지요. 욕심에 눈이 멀면 자기가 어떤 장단에 무슨 춤을 추고 있는지도 모르게 되죠. -연이 어디서 뿌릴 내리냐? 진흙이지? 아주 똥통 같은 데서 뿌리를 내린다고. 그런데 거기서 피는 꽃은 어때?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예쁜 꽃을 피운다니까. 돈을 버는 건 과정이 아냐! 결과야! 내 손에 돈이 들어오면 다 된 거라고! 몇 놈 죽거나 말거나 돈하고 무슨 상관이야!
영화 〈내부자들〉 원작 작가 윤태호의 인기작!
꼼꼼한 작전, 팽팽한 심리전. 사기도 예술이다!
신안 앞바다 보물을 찾으러 모인 근면성실 악당들의 고군분투기!

파인 은 미생 으로 150만 부 판매 신화를 이루며 국민 만화가로 등극한 윤태호의 신작이자, 작가의 장기가 십분 발휘된 범죄물이다. 출세작인 야후 부터 본격적인 흥행작가로 발돋움한 이끼 에서 볼 수 있듯, 윤태호의 전공 분야는 범죄나 계략 등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음험하고 다중적인 심리, 복잡하고 위험한 인간관계를 그리는 어두운 드라마다.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보물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지 1~2년 후인 1970년대 중후반. 골동품으로 한몫을 잡으려는 각지의 모리배들이 신안으로 몰려든다. 비상한 머리와 꼼꼼한 성격으로 공부 대신 사기에 능한 전략가 오관석은 인사동 골동품상 송 사장에게 신안 보물선의 유물 도굴 기획을 제안 받는다. 골동품 수집가인 사업가 천 회장을 자금줄로, 관석의 조카 희동, 천 회장의 심복 임전출, 송 사장의 심복 나대식,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 온 골동품 사기꾼들, 선장, 잠수부 등 서울과 목포를 오가며 여러 사람이 얽히고설켜 판은 점점 커지는데….

죄자답지 않게 성실하고 근면한 생활을 꾸려가는 가장이며, 철두철미한 기록 정신이 깃든 꼼꼼한 영혼의 소유자 관석, 삼촌의 영향 아래 범죄자로 성장하지만 여리고 순정이 있는 희동 등 작가의 입체적인 캐릭터 구축 능력을 엿볼 수 있는 인물들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이런 인물들과 함께 당시 모습을 눈앞에 펼쳐 놓은 배경, 독자들의 뒤통수를 치는 포인트를 곳곳에 심어 놓는 완벽한 완급 조절, 음험함과 의뭉스러움이 펄떡이는 차진 대사, 인물들의 미간에 꽉 잡힌 주름. 이 모든 것들이 독자들을 1970년대 서울과 목포, 신안을 오가며 벌어지는 생생한 범죄의 현장으로 데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