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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초 연인들

소읍읍 2024. 1. 24. 03:32


사랑이란 무엇일까, 한때 사랑의 마법에 걸려 이 세상 전부를 다 가진 듯 행복해 하던 친구들을 보며 그 마법에 나도 한 번 빠져보고 싶었고 그 마범이 나에게도 찾아왔을 때 나는 알았다. 사랑하는 순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사랑의 마법이라 부르는 것들. 이 세상에 사랑만큼 고귀한 가치도 없었고 사랑에 귀한 목숨 기꺼이 걸어보겠다고 다짐까지.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하루라도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미칠 것 같던 통화가 하루에 한번, 일주일에 몇 번으로 변해가는 동안 그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을 몰라도 숨 쉬고 살아갈 수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그때 알았다. 사랑은 고귀한 그 무엇도 아니었고, 우리가 느끼는 수많은 감정 중에 하나일 뿐이라고. 오롯이 나만의 무엇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하고 겪는 혹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이라는 거. 그러면서 사랑에 목숨건다, 어쩐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행위 따위 가장 어리석은 일임을 이제는 안다. 마법의 순간이 끝나는 순간 사랑을 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경험을 어쩌면 최고의 가치로 여겨왔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에 대한 직접적 간접적 경험들을 통해 사랑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는 것임을 이제는 안다. 여기 네 번째 여자, 다서 번째 남자를 만나러 가는 이준호와 박민아가 있다. 웃기기도 하고 미안한 얘기지만 그들의 사랑은 뻔했다. 우리들이 하는 뻔한 사랑을 하고 있어서 사실은 재미있다. 적어도 그 때 그 아이도 그랬을까, 하고 제멋대로 상상하며 잃어버렸던 퍼즐조각을 찾게 되고 엉켰던 퍼즐이 드디어 완성되게 될 테니까. 어느 정도 뻔하냐면 소개팅에 대해 생각하는 준호와 민아가 그렇고, 왠지모를 끌림은 없던 인연도 착착 만들어 내고, 어느덧 좋아하는 가수가 같아지고 좋아하는 영화 장르가 같아지는 식이다. 이메일 공동계정이라던가 밤새도록 전화기 붙잡고 미주알 고주알 깨알같은 일상, 웃기지도 않은 일상에 까르르 웃어주기 등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음직한 시작하는 연인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리고, 마법은 왜 그렇게 오래 가지 못하는지. 연애의 목적이 결혼은 아닐진대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지 복잡한 생각들이 오고가며 그때서야 서서히 현실이 보이고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평생 같은 곳을 바라봐 줄 것만 같은 그 사람, 언제 나랑 함께 있기는 했었나 의심의 눈초리를 총총 날리며 덜커덩 덜커덩 거리기 시작하면 우연과 필연에 의지해 쌓아올린 공든 탑은 서서히 무너지고 만다. 여기까지 준호와 민아의 사랑 이야기, 어쩌면 우리들이 하고 있는 쿨하다는 사랑 이야기일지도. 다른 곳에서 발생해 잠시 겹쳐졌던 두 개의 포물선은 이제 다시 제각각의 완만한 곡선을 그려갈 것이다. 그렇다고 허공에서 포개졌던 한 순간이 기적이 아니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안녕" 준호의 목소리가 밤하늘에 평평하게 울려 퍼졌다. "응, 안녕." 민아도 조그맣게 읊조렸다. 놀랄만큼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사랑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준호와 민아가 한 사랑은 심심한 사랑이었을지 모르겠지만 나름 각자의 세계에서 사랑의 역사를 썼던 만큼 다음 사랑을 위한 자양분이 되었길 바란다. 우리의 첫 사랑이 다음 사랑을 조금은 성숙하게 만들어 줬던 것처럼. 준호나 민아나 사랑을 다 알기엔 경험이 부족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몰라도 너무 몰랐던 그 때가 있어 지금에 나, 사랑이란 보편적인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며 평형을 유지하고 있는 걸까.
한국을 대표하는 젊은 작가, 그 독보적 선두 라는 수식으로 요약되는 사랑스럽고 매혹적인 작가 정이현. 위트와 지적 성찰이 결합된 우아하고 예민한 글쓰기로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인의 일상과 감성을 정밀하게 포착해내는 작가 알랭 드 보통. 이들 두 작가는 ‘사랑, 결혼, 가족’이라는 공통의 주제 아래, 각각 젊은 연인들의 싱그러운 사랑과 긴 시간을 함께한 부부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장편소설을 집필하기로 하였다. 2010년 4월부터 2012년 4월까지 꼬박 2년 동안, 작가들은 함께 고민하고, 메일을 주고받고, 상대 작가의 원고를 읽고, 서울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의 원고를 수정하여 마침내 두 권의 장편소설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사랑의 기초_연인들 은 21세기의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이십대 남녀들이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평범한 연애의 풍경을 담은 작품이다. 작가는 이십대 후반의 민아와 준호, 운명이라 믿었던 두 사람의 사랑을, 그 사랑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꿈을, 그리고 그것이 허물어져가는 서글픈 과정을 때로는 바닐라향처럼 달콤하게, 때로는 가슴 아프도록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사랑의 기초_연인들 은 정이현의 세 번째 장편소설이자 마지막 연애소설이며, 생동감 넘치는 현재진행형의 사랑 이야기다.

작가가 포착해내는 감정의 결들은 너무나 섬세하고 미묘해서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을 문장으로 읽어내려가는 사이 모호했던 감정들은 뚜렷하고 구체적인 실체로 윤곽을 드러낸다. 정이현의 사랑의 기초_연인들 은 소위 ‘연애소설’이라 일컬어지는 어떤 로맨스서사와도 겹쳐지지 않는다. 여기엔 뜨거운 사랑의 열기도 절망적 위기도 치명적 파국도 없다. 그들의 이야기는 심지어 해피엔딩조차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이 갖는 울림은 길고 깊다. 그것이 보다 현실에 가깝기 때문이고, 누구나 이러한 연애를 한번쯤 해봤기 때문이며,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진짜 연애가 바로 이런 모습이기 때문이다.


첫 독자의 말
작가의 말
돌연한 시작

이름의 기원
두 아이
최초의 타이타닉
당신과는 다른 이야기
기다리다
기적의 비용
자발적 오독
여름의 흐름
시외버스 터미널
단 하나의 방
사소한 그림자
첫번째 눈송이
그날의 사랑은
나란히 놓였던 발
세계의 끝,

완벽한 착륙